프랭크 램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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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영국의 수학자 [편집]
1.1. 수학적 업적 [편집]
1.2. 철학적 업적 [편집]
1.3. 경제학적 업적 [편집]
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의 권유로 램지는 단 세 편의 경제 관련 논문을 썼는데, 세 편 모두 나중에 경제학의 주요한 주춧돌로 자리잡게 된다. 유명한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은 이 논문들을 가리켜 '그의 주요 관심사였던 수학의 기초와 지식에 대해 추구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얻게 된 세 가지의 위대한 유산'(three great legacies – legacies that were for the most part mere by-products of his major interest in the foundations of mathematics and knowledge.)이라고 평했다.
1.4. 기타 [편집]
나는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생명과 경험은 인과적으로 거의 중요하지 않다고 항상 깊이 확신하고 있었다. 천문학의 세계가 내 상상을 지배하고 있었고, 은하계들에 비교해보면 이 지구는 사소한 것이라고 명확하게 자각하고 있었다. 나는 램지의 『수학의 기초』에서 내가 느끼지 못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는 부분을 발견하였다. "내가 상당수의 내 친구와 다른 점은 물리적 크기의 중요성을 거의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. 나는 우주의 광대함에 대해서는 조금도 겸손해지지 않는다. 별들은 크기야 하겠지만 생각하거나 사랑할 수 없다. 생각하거나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크기가 일으키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감명을 주는 품질이다. (중략) 내 세계상(picture of world)은 원근 화법으로 그려지는 그림이지 측정하고 계산할 수 있는 모형이 아니다. 그 그림의 전경은 인간들로 채워져 있고, 별들은 모두 저 멀리에 서푼어치도 못되는 사소한 것으로 그려져 있다. 나는 정말이지 인생의 행로와 어쩌면 동물의 감각 작용의 부분에 관한 복잡한 기술로서가 아니라면 아예 천문학을 믿지 않는다. (중략) 나는 내 세계상의 전경을 채우고 있는 인간들에 흥미가 있고 또 대체로 인간들을 존경하고 있다." 감정에 관해서는 논쟁이 있을 수 없으므로, 나는 잠시 동안 내가 느끼는 감정이 램지의 감정보다 더 좋은 체하지 않겠지만, 내 감정은 램지의 감정과 엄청나게 다르다. 나는 인류와 그 어리석음을 찬찬히 살펴보는 일에는 거의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. 나는 칭기즈칸에 관하여 생각할 때보다 안드로메다의 성운에 관하여 생각할 때에 더 행복하다. 나는 칸트처럼 도덕 규칙을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과 똑같은 평면에 놓을 수 없다. (중략) 나는 세계가 헤겔의 야심적인 저작들이나 그의 우주 모형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마음이 전혀 없다.
1.5. 더 읽어볼만한 글 [편집]
2. 미국의 농구선수 [편집]
1931년생으로 프로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.
[1] 〈나는 이렇게 철학을 하였다〉 버트런드 러셀, 곽광제 옮김, 서광사, pp.206-207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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